[대선풍향계] DJP연합·문안드림…단일화, 다시 대선 중심에 서다
[앵커]
'단일화'가 다시 한번 대통령 선거의 중심에 섰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보수 진영 내에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요.
이번주 대선풍향계에서는 후보 단일화가 대선 때마다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이준흠 기자입니다.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이 양강 구도를 흔드는 변수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으로 떠오른 '야권 단일화'입니다.
안 후보는 겉으론 단일화에 관심 없다, 선 그으면서 완주 의지 불태우고 있는데, 내심은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 같은데요.
윤석열 후보가 선거대책위원회 내홍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안 후보가 윤 후보 지지율 상당 부분을 흡수한 것입니다.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지지율을 끌어 올렸죠.
솔솔 피어나는 분위기 속에 정권교체 바라는 야권 지지층의 관심 불러 모으고 있는데요.
단일화 하든 안 하든 지지율 높여야 하는 안 후보측, 열심히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있습니다.
"누가 더 좋은 정권 교체의 적임자인지, 누가 더 확실하게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후보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께서 저는 가르마를 타 주실 거라고 보거든요."
후보 단일화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치 현상입니다.
우리 선거에는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 득표자들끼리 한 번 더 맞붙는, 결선 투표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도 단일화가 결정적 변수였습니다.
1997년, 지역기반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른 김대중-김종필 두 후보는 일명 'DJP연합' 합의문을 이끌어 냈습니다.
대통령 후보는 김대중, 초대 국무총리는 김종필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김 전 대통령 당선에는 20% 가까이 득표한 이인제 후보의 존재, 또 외환 위기라는 특수 상황도 영향을 미쳤지만, 김 전 대통령이 충청, 영남에서 지역주의를 누그러뜨리고 외연 확장에 성공한 배경은 단일화입니다.
2002년 16대 대선은 민주세력과 재벌 오너 출신이 손을 잡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두고, 여론조사를 통해 노무현 후보가 단일 후보로 우뚝 섰는데요.
노무현 48.9%, 이회창 46.6%의 득표율로 단일화의 힘을 톡톡히 보여줬습니다.
물론 1987년, 김영삼·김대중 후보처럼 단일화에 실패한 경우도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갈라진 이들, 재야 인사들의 단일화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쥐었습니다.
현재 야권 단일화의 핵으로 떠오른 안철수 후보, 10년 전인 2012년 18대 대선 때도 단일화 논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안 후보는 2012년,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문재인 후보와 지리한 단일화 협상에 나선 끝에 결국 후보를 사퇴했죠.
"이제 단일후보는 문재인 후보입니다. 그러니 단일화 과정의 모든 불협화음에 대해서 저를 꾸짖어주시고 문재인 후보께는 성원을 보내주십시오."
사실 안 후보에게 '단일화'는 아픈 단어일 겁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시 박원순 변호사에 후보 자리를 양보하며 불출마했고,
지난해에는 오세훈 후보와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승부를 벌인 끝에 여론조사에서 밀려 패했습니다.
이같은 지난 경험, 또 현재 안 후보의 상승세로 짐작해보면 안 후보가 단일화 힘싸움에서 쉽게 자리를 양보할 가능성, 낮을 거란 분석이 많습니다.
"설 이후에서도 한참 지나서 아마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선만 3번이고 서울시장까지 하면 5번째 큰 선거를 치르는데 호락호락하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아요. 예전처럼 양보하는 식으로."
역대 의미있는 단일화 시도는 주로 진보 진영에서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보수 진영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죠.
다만 정권 교체 여론 거세질까 걱정하는 민주당은 물론, 정권 교체 선봉장에 서고 싶어하는 국민의힘에서도 서서히 경계 태세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최근 부쩍 안 후보와의 연대 가능성을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권 단일화를 방해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겠지만, 이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정부에서 탄압을 받았다고 말해 당내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확장성 측면에서 의미가 줄었다"고 안 후보를 평가절하했습니다.
'자강론'을 내세우며, 안 후보의 야권 대안 세력화 차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됩니다.
"결국에는 대안 없는 양비론을 지속하다 보면 다시 원래 지지율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일화, 정치인 입장에서는 잘만 하면 필승카드가 되겠지만, 유권자들에겐 지지 후보가 갑자기 사라지는 황당한 정치공학일 수 있습니다.
단일화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단일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진정한 단일화가 됐느냐를 되짚어보면,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지지한다고는 했지만, 선거 당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결과적으로 화학적 결합, 일명 '문안드림'은 드림팀을 만들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경우,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 약속을 깨고 투표 전날 밤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도 했죠.
대선 때까지 유지된 유일한 성공 사례인 김대중-김종필 단일화도, 집권 후 핵심 조건인 '내각제 개헌' 무산으로 두 사람은 갈라섰습니다.
두 사람에게 표를 몰아준 국민의 뜻이 이뤄지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듯 단일화는 하기도, 설령 한다고 해서 유지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단일화라는 태풍, 찻잔 속에만 머문 채 잦아들까요.
아니면 찻잔 밖으로 나와 판을 뒤흔들게 될까요?
지금까지 대선풍향계였습니다. (hu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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